독도일지 제29화

현장송 | 기사입력 2023/11/07 [18:40]

독도일지 제29화

현장송 | 입력 : 2023/11/07 [18:40]

▲ 저자 현장송 기자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725일 미군은 피난 시켜 주겠다.”라며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 위치한 경부선 철도 위에 모인 피난민 500여명에 대해 모든 피난민을 적으로 취급하라!”는 명령을 내려 옴짝달싹 못하게 가둬놓고 23일 동안 무스탕 전투기 기총사격으로 300여명을 사살하고 200여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는 단지 인민군이 쏜 총에 미군하나가 죽었다는 이유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자연동굴 고깨굴(哭溪窟)에서도 자기들과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 100여 명과 피난민 300여 명을 학살했다. 아비규환을 만들고 면사무소까지 폭격하여 죽은 사람들 이름까지 불살라버린 야만적인 사람들이다. 선조들은 고깨굴 속 죽음을 진작에 알았을까? 냇물은 지금도 고깨! 고깨!” 슬픈 곡소리로 흐른다.

 

83일에는 피난민들이 떼 지어 건너는 낙동강 다리를 폭파하여 양민 수 백 명을 숨지게 하고도, 입 다물고 숨기려했다. 그러나 1950810일 북한 해방일보’ ‘조선인민일보에 의해 희생자가 2,000명에 이른다.”고 고발당했다.

 

그러면서 노근리 학살진상규명 요청에 증거가 불충분하다라고 피하려 하였으니 자신들이 눈물 흘리면서 찍어간 사진은 증거가 안 된다더냐.

 

당시 종군기자였던 스완톤이 자기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 이 전쟁의 가장 처참한 부분은 수 백 명 피난민들이 우리 공군 기총소사로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많은 전쟁을 보았으나 이렇게 참담한 광경은 처음이었습니다. 피난민 중에 적이 끼어있다는 것 때문이라지만 대부분이 어린이이며 노약자, 부녀자들입니다.

 

적 한 명 죽이는 데에 25명 무고한 양민이 죽는다고 계산했습니다. 정말 이렇게 살육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한국인을 적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요! 아무리 남의 나라 전쟁터라고 하지만 떼 지어 부녀자 겁탈을 일삼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도 질책을 받아야 했으니 참으로 부끄럽고 창피하여 미 국민으로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라고 적었다.

 

당시 기관총 사수였던 제임스 컨스사람들은 실종 미군 얘기하기는 원하지만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에 대하여는 끔찍하여 언급하기조차 꺼려한다.”고 했는데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 하나로 깔아뭉갤 수 있다더냐!

 

AP 통신에 의해 실체가 드러날 때까지 진상규명조차 하지 않으려 들던 너희가 그래도 선진국이라더냐! 너희는 시효가 지났는지 모르지만 우리들 가슴 속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새록새록 살아있는 아픔이다. 그런 미국을 믿고, 그 통치를 받으라고? 홍순칠이 살아있는 한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홍순칠 할아버지 홍재현(洪在鉉) 옹은 천지신명이시여 이 섬은 하늘이 주신 우리 땅이며, 예나 지금이나 우리 동포의 생활터전이기에 우리가 아끼고, 우리가 지켜갑니다. 오늘도 30여명이 돌섬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죽어서도 이 섬을 지키고자 합니다.”라며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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