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일지 제30화

현장송

편집국 | 기사입력 2023/11/21 [18:33]

독도일지 제30화

현장송

편집국 | 입력 : 2023/11/21 [18:33]

▲ 저자 현장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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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독도에 무단침입 <독도 조난어민 위령비>를 파괴하고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근거로 일본 영토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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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이 평화선을 선포하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다가 울릉도 어민들이 다시 어업을 시작한 41일 강치들 수백 마리가 즐비하게 누워 낮잠에 빠진 오후,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이 침범했다. 해녀들은 갑자기 나타난 적들로 화들짝 놀라서 물골, 굴속에 숨어 미역따개 낫을 움켜쥔 채 일전을 준비했으나 도근현(島根縣) 은기부(隱崎部) 오개촌(五箇村) 죽도(竹島)”란 팻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다음 날 울릉경찰서 독도순라반(獨島巡邏班)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로 바꾸면, 다시 또 일본국 시마네 현 다케시마로 바뀌었다. 그렇게 뽑혀오고 뽑혀간 팻말이 다섯 개다. 홍재현(洪在鉉) 옹 의견으로 동도 정상 아래쪽 곰보 바위에 영원히 지울 수 없도록 바위를 깎아 한국령(韓國領)’을 새겼다.

 

19506.25, 동족상잔, 피 튀기는 싸움에서 소련제 장갑차를 육탄으로 저지하고, 탱크 저격병으로 활약하다 부상하여 특무상사로 제대한 손자 홍순칠(洪淳七)에게 건너가 독도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은 더 굳어졌다.

 

경북 병사부 사령부를 설득해 권총 2, 소총 몇 정, 경기관총 2정을 구비했다. 독도 바다의 청정 해산물과 해구신을 주고 부산과 대구의 양키시장에서 무장단체불허용이라 극비라며 6.25 전쟁에서 노획한 소련제 직사포 1, 권총 2자루, 경기관총 2, 인민군이 빼앗긴 조준 대 없는 박격포 1, M2 3, M1 10, 수류탄 50발을 구비하고 낡은 무전기까지 갖췄다. 울릉경찰서와 군에서 제대한 울릉도 거주 상이용사를 설득하여 독도수호 향토 예비군을 편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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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도동 선착장에서 독도 의용수비대발대식이 있었으니 낡은 군복에 밀짚모자를 눌러쓴 대원도 있고, 커다란 미군복을 검정물 들여 입은 대원들도 있었다.

 

대 장 - 홍순칠(洪淳七) 대장 부관 - 황영문(黃永文)

 

1전투대 - 서기종(徐基種), 김재두(金在斗), 최부업(崔富業), 조상달(曺相達), 김용근(金容根), 하자진(河自鎭), 김현수(金賢洙), 이형우(李亨雨), 김장호(金障浩), 양봉준(梁鳳俊)

 

2전투대 - 정원도(鄭元道), 김영복(金永福), 김수봉(金守鳳), 이상국(李相國), 이규현(李圭賢), 김경호(金景浩), 허신도(許信道), 김영호(金永鎬).

 

후방지원대장 김병렬(金秉烈), 정재덕(鄭在德), 한상용(韓相容), 박영희(朴永姬) 홍대장 부인

 

교육대장 유원식(兪元植), 오일환(吳一煥), 고성달(高成達).

 

보급주임 김인갑(金仁甲), 보좌 구용복(具鎔福)

 

보급선장 정이관(鄭利冠), 기관장 안학률(安鶴律),

 

갑판장 이필영(李弼永) 정현권(鄭現權), 통신원 - 경찰 허학도(許學道) 541022일 추락사

 

34명 독도수비대는 연합군 모습이었다. 재수 없이 맹장에 걸려 억울한 죽음을 맞지 않고 오직 독도 수비대원으로만 죽기 위해 맹장을 잘라내는 수술까지 거쳤다. 개머리판 없는 카빈총, 탄창을 철사로 동여맨 소련제 중기관총, 인민군들이 죽으면서 논두렁에 던져버린 따발총을 메고 가족들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것으로 발대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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