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단지 하나 된장 단지 하나 가슴에 안고 오곡 자루를 하나씩 뱃머리에 싣고 가족들과 통신을 위하여 벨기에 산 비둘기 한 쌍을 소중히 싣고 제1진, 15명이 독도를 향해 발진하던
1953년 4월 19일 밤, 도동항 바다는 더없이 괴괴하고 동해의 찬바람이 품속에 들어 아직도 뼈골을 쑤시지만 홍순칠 대장 발대식 말씀이 귓가에 쟁쟁했다.
홍순칠 대장은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 이전에 우리가 살고 있는 민토(民土)입니다. 우리가 살아 갈 양식을 얻고 있는 논이요, 밭입니다. 이 문전옥답에 참새가 날아들어도 쫓아야 되거늘 화적 같은 일본 놈들이 침범하는 것을 어찌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고만 있어야겠습니까? 우리 밭을, 우리가 지키는데 백의종군하는 의병으로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그래서 먼 훗날 자손들로부터 욕먹지 않고, 우리들이 지킨 독도에서 평화롭게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독도를 지켜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포기한 독도는 영원히 우리 품에 돌아오지 못합니다.”라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밤 새워 물결을 헤치고 달려 온 3톤짜리 6마력 어선 ‘삼사호’ 1953년 4월 20일 오전 8시 20분 독도의용수비대 제1진, 독도 상륙! 독도에서 맞는 아침 해는 더욱 붉었다. 천지창조 첫 날에 독도는 한반도의 감괘(坎卦)로서 태어나 동해를 지켜 왔나니 영원한 조선 혼이로다.
제1진을 실어 온‘삼사호’이필영은 제2진을 태우러 울릉도로 되짚어 갔다. 맨 처음 국기 게양대를 설치하고 제2진까지 도착한 4월 21일 아침 국기 게양식을 거행했다.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독도 아침은 더욱 찬란했다. ‘우산국’이래 무인도였던 독도는 비로소 유인도가 됐다.
누가 독도를‘바위섬’이라 했더냐! 바다 속부터 땅 속까지 온갖 생명이 넘실대는 섬 숫섬(西島). 동쪽 해안에 배를 댄 대원들 갑자기 앞길을 막아서는 7~80도 가파른 절벽! 막무가내로 무너져 내리는 화산재 층에서 굴러 떨어지며, 풀뿌리를 잡고 오르다 끝내 포기하고 날렵한 허신도(許信道) 대원이 밧줄로 몸을 묶고 먼저 올라서 구명줄을 내려 흙 절벽을 올랐다.
다시 몽돌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은 깎아지른 절벽!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내리질러야 생명수를 찾을 수 있다는 홍재현 할아버지 가르침대로 로프를 설치하고 해안으로 내려서니 입을 쩍 벌리고 있는 해식동굴. 똑, 또오~옥. 은반을 두드리는 소리! 왕호장근은 그 물소리만으로도 장정 키 만큼 자라 푸른 숲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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