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침략이 시작되다.

현장송 | 기사입력 2020/09/23 [22:06]

몽골 침략이 시작되다.

현장송 | 입력 : 2020/09/23 [22:06]

▲ 저자 현장송 기자     ©

 

231(고종 18) 89

 

1225년 고려에 왔던 몽골 사신 저구유(著古與)가 압록강 너머에서 여진족 푸젠완누 습격으로 피살됐다. 몽골은 그 책임을 온전히 고려에 물으면서 8월 살리타이(撒禮塔)군대가 침공하여 귀주대첩에서 박서(朴瑞)에게 대패하지만 4개월간 싸우다 개성이 함락됐다. 12월 고려는 오코타이 칸에게 항복한다.

 

몽골의 총지휘관 살리타이(撒禮塔)가 철군하면서 서경(평양) 북계(평안도)에 다루가치(達魯花赤)를 배치, 고려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元史원사고려전에 “72명의 다루가치를 40여개 성에 배치하였는데 이듬해 모두 고려인에게 피살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2311223일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고 강화로 천도하는 것이 5개월 만에 결정되고, 6개월 만에 전격 실행된다.

 

몽골은 고려 왕정과 국사 전체에 간여하는 다루가치(達魯花赤)를 파견하였으나 백성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흔들리며 계속 부대꼈다.

 

처음이랄 것도 없이, 나중이랄 것도 없이 그저 훌쩍 떠나고 싶은 역사지만 삼별초일지(三別抄日誌)는 강화천도로부터 시작된다.

 

출륙환도(出陸還都)

 

1232(고종 19) 616

고려, 강화천도(江華遷都)를 결정하다.

 

찌는 무더위다. 대낮 초파리 같은 길 앞잡이란 놈이 눈앞에 어른거려 눈을 뜰 수도 길을 갈 수도 없다. 내일은 틀림없이 날이 궂을 것인데 날씨가 고려의 미래처럼 혼란스럽기만 하다.

 

집권자 최우(崔瑀)는 몽골 침입에 대한 군사·외교적 대응으로 전격 강화천도(江華遷都) 방침을 정했다.

 

몽골과 화친을 약속한지 반년만이다. 고려가 살 길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는 길 뿐이란 결론을 내린 때문이다. 그리고 곧바로 몽골의 다루가치와 잔류 병력을 몰아냈다.

 

강화도는 물로 둘러싸인 섬으로 돌모루나(席毛島), 볼음, 주문, 교동, 서검, 동경, 어유정 등 스물여섯 섬들을 기암 단애로 점찍어 놓은 명실 공히 대몽항쟁의 거점지로서 38년 동안 고려의 수도가 되었다.

 

한눈에 펼쳐지는 서해바다, 전선은 잠들었나! 넘실대는 거친 파도소리, 갈매기 물똥 깔겨 파도 숲에 숨는다. 외포리(초지돈대) 선착장 창망한 앞바다. 여기가 나라의 관문이던가!

 

1866년 병인양요 프랑스군과 피로 물든 치열한 싸움도 여기 있었다. 그리고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국과 싸움도 여기 있었다.

 

미군대령 슐레이조선은 근대적인 총 한 자루 없이 낡은 옛날 무기를 가지고 새로운 무기로 무장한 미군에 대항하여 용감히 싸워 모두 전사했다. 아마도 가족과 국가를 위하여 그토록 강력하게 싸우다 죽는 국민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1875821일 일본 이노우에 함장이 몰고 온 운요호(雲揚號) 침범도 외포리였다. 죽음으로 얼룩진 바다, 전쟁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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